군위 군위읍 - 이천서씨 서호정사(西湖精舍)1952년
군위군 군위읍 수서리 358
西湖精舍記
直赤羅治五里許有村可捿名曰水西卽利川徐氏世庄也依山結一宇隱然映輝于草樹之間者名曰西湖精舍卽慕監察御司公諱自逍而作也盖聞公當國朝靖陵之際早登科第歷敡淸要位至崇秩以直道事君鄭相國光弼一見輒許其大器之足堂尹公忭三節堂崔公汝舟樂學之交好靜菴趙先生其以遠大心手相應朝黨宵輩多側目焉逮至己卯一時善類皆當慘禍公則流配赤羅及至明廟朝首伸禍獄公始蒙侑赦遂無意仕進仍留寓是郡登臨山水嘯咏吟詩爲聖世耕鑿之逸民今鳩湖水西東部泉石之勝皆公杖屨遊賞之地也日其嗣孫鏞夏氏與其堂親鍾九氏康福茂澤甫奉家狀愁然告余曰先祖垂裕之誠如是而尙無寓慕之所故伊昔宗父老歲据多少錢穀每欲就鳩湖水石構築數間精舍矣此而未遂先父老己盡謝吾輩亦朝暮人袛俟方來之後生輩矣何幸水西諸族謀于全宗獨擔巨貨就所居山傍築四棟六間楬曰西湖精舍以精舍在屛湖之西也願吾座一言爲記以明精舍之所由起也余作而復之曰舍之作學不作誰云孫乎姓孫之誠與不誠然亦有數存焉者也至乎三百載之久而鳩湖諸族之未遑水西諸族能之構於嗣孫所居之地者而乃構於諸孫所居之地自鳩湖以觀之雖若可恨然支派而不得宗派之勸督而構祖先之舍者則亦一重宗之道也何害於共慕祖先也且祖先洋洋之靈如水衣地矣何往不格亦何往不然也於乎今以後慈孫遹追之誠友睦之義各盡其道矣但從今益勉者歲時精禋香火不替春秋肄業絃誦不絶以不墜公垂裕後昆之盛則庶幾無忝所生云爾
歲黃狗仲秋節英陽南鼎基謹記
赤羅의 邑에서 곧바로 五里남짓한 곳에 마을이 있고 可히 棲息할만한데 이름을 「水西」라고 한다.
즉 利川 徐氏들이 대대로 살아 온 田庄이며, 山에 의지하여 집 한 채를 지어 숨은 듯이 풀과 나무숲 사이에 빛을 비추이고 있 는 것을 「西湖精舍」라고 이름지었으니, 즉 監察 御司公이신 諱 自逍를 위하 여 지은 것이다. 대개 들으니 公은 國朝의 靖陵(中宗)의 즈음에 일찍이 급제 에 올라 淸要한 관직을 두루 거쳐 爵位가 높은 벼슬에까지 올라 곧은 道로 서 임금을 섬기니 鄭相國이신 光弼이 한번 보더니 문득 大器임을 인정하였 으며, 足堂이신 尹忭公과 三節菴이신 崔汝舟公과 학문을 좋아하는 친교로 삼 았으며, 靜菴이신 趙先生을 좋아하였으며 그 遠大한 마음과 솜씨가 서로 호 응하자 朝廷에 간사한 무리들이 많이 눈을 흘겼던 것이다. 己卯(一五一九)年 에 이르러 一時의 착한 士類들이 모두 참혹한 禍를 當하자, 公도 赤羅로 流配되었다가 明宗朝에 이르러 맨 먼저 禍獄者의 伸寃을 하였는데 公도 비로 소 赦免을 받았으며, 드디어 벼슬길에 나아가기를 단념하고 因하여 이 郡에 머물러 寓居하며 山水에 登臨하기도 하고 거문고와 詩로서 휘파람도 불고 詩도 읊으며 聖世에 밭갈이하고 공부하는 편안한 백성이 되었던 것이다. 지 금 鳩湖와 水西와 東部에 泉石의 아름다움은 모두 公이 지팡이를 끌며 거닐 면서 유람하고 감상하시던 곳이다. 어느 날 그의 嗣孫인 鏞夏氏가 그의 堂親 인 鍾九氏와 康福, 茂澤선비로 더불어 家狀을 받들고 와서 슬픈듯이 나에게 告하며 말하기를, ꡔ先祖께서 넉넉함을 물려주신 정성이 이와 같았는데도 아 직 寓慕할 장소가 없기 때문에 옛날에 宗中의 父老님들이 해마다 多少의 錢穀을 모아 매년 鳩湖의 水石으로 나아가 數 間의 精舍를 짓고자 하였으나 지금껏 이루지 못하고 先父老님은 이미 다 돌아가셨고, 우리들도 역시 오늘 내일 죽을 날이 가까워 공경히 後生輩들을 기다리고 있었더니, 어찌나 다행 하게도 水西의 諸族들이 全宗과 상의하여 홀로 큰 재물을 부담하여 살고있 던 山의 곁으로 나가 四棟 六間을 지어 현판을 「西湖精舍」라 하였으니, 精舍 가 屛湖의 西쪽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라건대 우리 자네는 한마디 말씀 으로 記文을 지어 精舍를 짓게 된 유래를 밝혀 주십시오ꡕ라고 하였다. 내가 자세를 가다듬어 그들에게 말하기를 ꡔ精舍만 짓고서 학문을 일으키지 않는 다면 누가 자손이라 하겠느냐? 자손들의 정성과 또는 정성스럽지 못한 것이 다. 그러나 역시 운수가 있는 것이니라. 三百 年의 오랜 세월에 鳩湖의 諸族 들이 이룩하지 못하였던 것을 水西의 諸族들과 嗣孫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지으려 하였으나, 이에 諸孫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지었으니 鳩湖의 입장에 서 본다면 비록 가히 恨스러운 것 같으나 支派로서 宗派의 권유나 독촉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祖先의 精舍를 지은 것은 역시 하나의 宗中을 重하게 여 기는 道인데 함께 祖先을 사모하는데 무엇이 해로우랴! 또한 祖先의 洋洋하 신 영혼은 마치 물이 地下에 있는 것 같아서 어디를 간들 오시지 않겠으며 또한 어디를 가던 그렇지 않으리오? 아! 지금 이후로는 慈孫들의 先祖를 추 모하는 정성과 孝友하고 敦睦한 義를 각자가 그 道를 다할 것이며, 다만 지 금부터 더욱 힘써야 할 것은 歲時로 정결하게 香火를 피워놓고 제사를 모시 고 春秋로 학업을 기르기를 바꾸지 말고 絃誦의 소리가 끊어지지 아니하여 公께서 후손에게 물려주신 盛大함을 실추시키지 않는다면, 아마도 낳아주신 분을 욕되기 하지 아니한다 하리라ꡕ라고 하였다.
戊戌(一九五八)年 仲秋節에 英陽 南鼎基는 삼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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