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의 장군(의병장).
본관은 달성서씨.
서인충 장군 묘소(徐仁忠 將軍 墓所) 위치는 울산광역시 동구 동부동 산 127에 있다. 2018년 1월 30일 울산 동구의 향토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방보(邦輔). 서영(徐潁)의 9대손으로 할아버지는 증공조정랑(贈工曹正郎) 서규(徐規), 아버지는 증공조참의(贈工曹參議) 서희(徐熙), 어머니는 경산전씨(慶山全氏) 덕원(德元)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1년(선조 24)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주사장(舟師長)으로서 육전·수전에서 모두 큰 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1592년 훈련원봉사(訓練院奉事)에 오르고 이듬해 다대포수군첨절제사(多大浦水軍僉節制使)를 거쳐 1594년(선조 27) 부산진첨절제사에 임명되고 1596년 부산첨사(釜山僉使)에 올랐다. 1784년(정조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서인충(徐仁忠)[1554~1610]은 울산광역시 동구 남목동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병법과 무술 연마에 열중하였으며, 1591년(선조 24) 무과에 급제하였다. 무술을 연마하던 동구 동부동에 망조대비(望潮臺碑)가 세워져 현재까지 전한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재종 형 서몽호(徐夢虎) 등과 함께 창의하여 의병을 모집하였고, 주사장으로 울산가군수 김태허(金太虛)를 도와 전공을 세웠다. 6월에는 울산과 경주를 비롯한 영남 지역 의병장들이 경주 문천에 모여 결전을 맹세한 문천회맹(蚊川會盟)에 참여하였고, 이듬해 1593년 2월 울산 태화강전투에도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1593년 4월에는 이견대전투에 참여하였으며, 10월에는 울산의 반구정에서 열린 구강회맹(鷗江會盟)에 참여하였다. 1596년 3월 제1차 팔공산회맹, 1597년 7월 창녕의 화왕산회맹에도 참여하였다.
저술 및 작품
1847년 다산사(茶山祠)에서 간행한 『망조당유사(望潮堂遺事)』에 울산도호부사 윤지태(尹志泰)가 지은 묘갈명이 수록되어 있다. 1962년 『망조당실기(望潮堂實紀)』가 간행되었고, 2011년 『망조당유사』가 국역되어 간행되었다.
묘소
묘소는 울산광역시 동구 남목동 남옥산 기슭에 있다.
상훈과 추모
1593년 1월 어모장군 훈련원정으로 제수되었다가, 이듬해 절충장군 부산진수군첨절제사로 승진하였다. 1605년 4월 선무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이때 국왕으로부터 울산 남목의 일부 땅을 식읍지로 하사한다는 교지를 받았다. 1784년(정조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1791년 서인충의 5세손인 서달급(徐達伋)이 다산사를 지어 제향하였는데,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훼철 때 다산사도 훼철되었다. 이후에는 울산광역시 동구 동부동 옥강정사(玉崗精舍)에서 제향하기도 하였으나 이 또한 철거되었다. 2000년 충의사[울산광역시 중구 서원11길 25]에 위패가 봉안되었다
'서씨일가연합회(서일연)' 밴드방